누구나 학창시절에 반장을 뽑기 위해 투표를 했으며, 성인이 되어서는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같은 국민의 대표자를 뽑기 위해 투표를 해보셨을 텐데요. 우리나라의 공직선거에서 선거인이 받게 되는 일반적인 투표용지는 후보자의 기호와 소속정당명, 그리고 성명이 기재된 세로로 긴 형태(교육감선거의 경우 가로로 긴)의 네모난 종이입니다. 투표방식은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자나 정당의 이름 옆 네모난 칸 안에 기표용구를 찍는 것이죠. 우리는 이러한 모양의 투표용지를 당연한 듯 생각하겠지만, 세계 각국의 투표용지는 다양한 형태가 있으며, 우리 눈에는 독특하면서도 생소한 것들이 꽤 많이 있답니다.
<대한민국 투표용지 / 출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 선거가 처음 실시됐을 무렵에는 주로 거수나 구두 동의로 투표가 이루어졌습니다. 심지어 19세기까지도 종종 거수나 줄서기 등을 통한 공개투표가 계속됐는데요. 선거에서 뇌물, 부패, 협박 등의 문제점들이 발생하자 비로소 비밀투표가 등장합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오늘날의 투표용지와 비슷한 용도로 올리브 나뭇잎을 사용하기도 했고, 페리클레스 시대에는 도자기 파편을 이용하기도 하였습니다.
1850년대 중반, 세계 최초로 비밀투표를 도입한 호주에서 미리 인쇄된 투표용지가 처음 등장하는데요. 오늘날 비밀투표의 기원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선거인이 미리 인쇄된 투표용지에서 선호하는 후보자를 선택한 후, 남이 보지 못하게 접어서 투표함에 넣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다른 나라에서는 어떤 투표용지를 사용하고 있는지 세계의 독특하고 다양한 투표용지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림이 그려진 투표용지
<남부수단 투표용지 / 출처 : 남부수단 국민투표위원회>
위의 투표용지는 2011년 2월 남부수단의 분리독립을 묻는 주민투표에 사용된 투표용지입니다. 위쪽의 두 손을 맞잡은 그림은 분리독립 반대, 아래쪽의 하나뿐인 손 그림은 분리독립 찬성을 뜻하는데요. 투표방법은 유권자들이 원하는 곳의 원 안에 무인(拇印)을 찍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남부수단에서는 왜 이러한 투표용지를 사용하게 된 것일까요?
바로 문맹률이 85%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남부수단 자치정부는 국민 대다수가 글자를 모른다는 점을 고려해 이와 같이 그림을 넣은 투표용지를 사용한 것입니다. 이처럼, 투표용지는 국민들의 문맹률을 고려해 유권자가 글자를 모르더라도 투표할 수 있도록 만들어지는데요. 케냐는 2005년 새 법안의 찬반투표에서 찬성은 바나나 그림에, 반대는 오렌지 그림에 투표를 했다고 합니다.
정당의 상징이 표현된 투표용지
<인도의 전자투표기 / 출처 : 월스트리트 저널(WSJ)>
인도의 투표용지에는 정당의 상징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언뜻 보면 어릴 적 가지고 놀던 그림카드 같아 보이지 않나요? 남부수단의 투표용지와 마찬가지로 투표용지에 이러한 정당의 상징들이 포함된 이유도 높은 문맹률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도는 정당의 개수가 10년 전에도 550개나 됐지만 최근에는 1,400여 개에 이를 만큼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하지만 글자를 알지 못하는 유권자들이 대다수이기 때문에 이렇게나 많은 정당들을 구별하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따라서 유권자들의 투표를 돕기 위해 일상생활 속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연꽃, 자전거, 손바닥, 자명종, 낫, 코코넛과 같은 물품들이 정당의 상징물로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인도는 인구가 워낙 많아서 투표용지를 제작하거나 개표를 하는 과정이 엄청나게 어려울 텐데요. 이에 따라 인도는 지난 2004년 총선거부터 전자투표기(Electronic Voting Machines: EVM)를 도입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위 사진과 같이 유권자들이 각 후보자의 이름 옆에 붙어있는 버튼을 눌러 지지하는 후보를 선택하는 방식입니다. 이 전자투표기 덕분에 인도의 선거관리가 매우 수월해질 수 있었다고 하네요.
후보자의 얼굴이 인쇄된 투표용지
<남아프리카공화국 투표용지 / 출처 : capetowndailyphoto>
<터키 투표용지 / 출처 : voakorea>
<(좌)아일랜드 투표용지, (우)이집트 투표용지 / 출처 : wikipedia>
위 사진들의 공통점이 짐작되시나요? 바로 투표용지에 후보자들의 사진이 인쇄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문맹률이 높은 국가에서는 유권자들이 후보자들을 쉽게 알 수 있도록 사진이 인쇄된 경우가 많지만, 문맹률이 매우 낮은 유럽 국가에서도 이러한 투표용지를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아일랜드는 유권자들이 후보자들에 관한 많은 정보를 요구함에 따라 투표용지에 후보자들의 사진을 넣은 것이라고 합니다.
선거에 출마한 후보자들이 많아 헷갈리거나 후보자들의 소속정당을 잘 알지 못하더라도 사진이 들어간 투표용지로 투표한다면 비교적 더 쉽게 투표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특히 이집트의 투표용지는 후보자의 사진뿐만 아니라 알록달록한 예쁜 그림도 그려져 있어 투표를 더 하고 싶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역시 이러한 투표용지는 인쇄비용이 만만치 않게 들어가겠죠?
찍지 않고 쓰는(?) 투표용지
<일본의 자서식(自書式) 투표용지 / 출처 : www.idea.int >
일본의 참의원 선거는 선거인이 투표용지에 후보자와 정당의 이름을 직접 적는 방식을 택하고 있습니다. 후보자의 이름을 한자로 쓰다가 틀리면 무효표가 되기 때문에 후보자의 이름을 히라가나나 가타카나로 써도 무방한데요. 다만 최근에는 이름을 조금 틀리게 써도, 그 이외에는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힘든 이름을 적었을 경우는 유효표로 인정한다고 합니다.
이와 같은 자서식(自書式) 투표는 기표식 투표에 비해 개표시간이 길고 비용이 많이 들고 문맹자의 투표를 제한한다는 점, 필적에 의해 투표의 비밀이 노출될 수 있다는 단점들이 있는데요. 아무리 일본의 문맹률이 1% 미만이라고 하지만 이런 독특한 선거방식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참 신기하게 느껴집니다. 물론 자서식 투표는 투표의 유효율이 높고, 선거인 고유의 필체를 남김으로써 부정선거를 방지할 수 있는 장점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세계의 독특하고 다양한 투표용지에 대해 살펴보았는데요. 우리나라와는 사뭇 다른 투표용지를 보고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저는 유권자들을 배려해 후보자의 사진이나 정당의 상징, 그림을 투표용지에 같이 표현한 것이 참 인상 깊었는데요. 또한 이 작은 투표용지를 통해서 한 나라의 특성과 그들의 문화를 엿볼 수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앞으로 투표 편의를 높이기 위해 어떠한 투표방식과 투표용지가 도입될지 기대가 됩니다.
- 제11기 선거명예기자단 김윤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