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처닌 엔터테인먼트>
때로는 인간이 아닌 존재가 인간에게 성찰을 제공한다. 동물과 관련된 뉴스 등에서 “사람보다 낫다”란 말을 자주 하게 되니 말이다.
1968년 개봉한 영화 <혹성탈출>은 그런 아름다운 에피소드와 달리 매우 과격한 방식으로 인간 사회의 모순을 보여준 작품이었다.
만약, 지구 시간으로 3978년 즈음에 유인원들이 지구를 지배하게 됐다면 어떤 모습일까? 이후 1973년에 개봉한 <혹성탈출5 : 최후의 생존자>까지 이 시리즈는 유인원들의 사회를 통해 인간 사회를 은유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약 40년 후에 만들어진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2011)은 좀 더 구체적인 상상을 한다. 멀고 먼 미래에 유인원이 지구를 지배했다면, 그때 인간은 어떻게 된 건가? 인간은 어쩌다가 멸종했을까? 이후 ‘반격의 서막’을 거쳐 마지막 시리즈인 ‘종의 전쟁’까지의 새로운 3부작은 유인원과 인간이 갈등하고 대립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인간의 입장에서 이 여정을 따르다보면, 역시 인간이기에 별 수 없는 부분들을 느낄 것이다. 그리고 인간이 아닌 유인원 리더의 모습에서 그가 가진 고통과 내면적인 갈등도 보게 될 것이다. 왜 유인원은 인간과 대립하게 되었는가, 란 질문에 영화는 ‘좋은 리더’도 막을 수 없는 비극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출처 : 처닌 엔터테인먼트>
지난 2011년 개봉한 <진화의 시작>에서는 침팬지 한 마리가 탄생했다. 그의 이름은 시저(앤디 서키스)다. 시저는 새로운 치매 치료제의 실험대상이 되고, 이 과정에서 높은 지능을 얻게 된다.
단순히 높은 지능이 아니라 학습과 고민을 통해 지능이 늘어가는 정도다. 시저는 인간의 품에서 자라지만, 결국 다른 인간들로부터 멸시와 학대를 당하고 이에 분노해 다른 유인원들과 반란을 일으킨다.
그렇게 세상이 한번 뒤집어진 후, <반격의 서막>(2014)에서 인간과 유인원은 도시와 산에서 각자의 세계를 이루며 사는 중이다. 당연히 이들은 서로를 두려워한다. 두려워하기 때문에 서로를 먼저 죽이려고 한다.
하지만 시저는 자신이 이룬 가족과 세계를 지키는 먼저라고 생각한다. 그는 인간들과 일종의 타협을 통해 서로의 세계를 침범하지 않고, 각자 평화롭게 사는 세상을 만들려고 하지만 결국 그가 통제하지 못한 변수 하나가 전쟁을 일으킨다.
그리고 올해 개봉한 <종의 전쟁>에서 이제 시저는 아예 인간이 없는 곳으로 유인원들을 데려가려 한다. 하지만 멸종 위기에서도 또 다른 야심을 품은 인간들이 있다. 그들의 무모한 계획, 그 계획을 막으려는 또 다른 인간들, 그 사이에서 생존을 도모하는 유인원들, 이 사이에서 결국 가장 어리석은 인간들이 스스로 자멸하고 만다.
<출처 : 처닌 엔터테인먼트>
이 시리즈에서 흥미로운 전제 중 하나는 인간들은 자신에게 찾아온 위기가 유인원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 위기는 인간이 자초한 것이라는 설정이다. 전쟁과 차별, 혐오와 분노로 가득했던 지난 세기의 역사에서 배운 게 없었던 인간들은 유인원을 상대로 같은 역사를 반복한다. 그런데 이때의 유인원은 인간 만큼 혹은 그보다 더 똑똑한 지능을 갖고 있다. 쉽게 말해 이들은 당하고 가만히 있지 않는 동물들이다. 바로 그런 점에서 인간과 다를 게 없는 존재다.
<출처 : 처닌 엔터테인먼트>
그런데 주인공 시저는 여기서 인간보다 한발 짝 더 진보된 선택을 하는 리더다. 영화 속 유인원 무리들은 인간의 총에 가족을 잃은 후 복수를 꿈꾸지만, 시저는 이때도 그들과 대등한 관계에서 공존을 모색하려 한다. 서로에 대한 공격이 오가는 순간, 양쪽 세계 모두 파괴될 것이란 생각 때문이다.
시저는 영화 속 자신의 부하이자, 조직의 2인자나 다름없는 코바가 인간들을 먼저 공격해야한다고 말하자 다음과 같이 답한다. “인간들과 전쟁을 하게 되면 우리는 그동안 이룬 모든 것을 잃게 된다.
집과 가족, 그리고 미래.” 뿐만 아니라, 그는 자신이 이끄는 유인원들에게도 지구 최고의 존재가 되어야한다는 가르침이 아니라 우리끼리 먼저 연대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전하는 리더다. “유인원은 유인원을 죽이지 않는다.” “유인원은 뭉치면 강하다.” 인간들에게도 그대로 적용해야 마땅할 원칙이지만, 사실 오히려 인간들을 부끄럽게 만들 메시지일 것이다.
<출처 : 처닌 엔터테인먼트>
하지만 이렇게 훌륭한 리더인 시저도 결국 비극을 막지 못한다. 자신의 신념과 가치를 소중히 여기느라 다른 이의 마음 속에 있는 어둠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간을 향한 선제공격을 부르짖는 코바 역시 원래 실험실의 유인원이었다. 그의 몸에는 아직도 실험당시 새겨진 흉터가 있고, 마음에는 인간을 향한 증오가 가득하다.
코바의 시선에서 볼 때 인간과의 평화란 말도 안되는 소리인 것이다. 인간을 절대 믿지 않는 코바는 시저가 인간들과 교감하는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아마도 자신을 키워주었던 인간과의 좋은 기억을 갖고 있던 시저에게는 코바의 증오심을 다 헤아릴 수 없었을 것이다.
코바가 자신의 뜻에 반항하자, 시저는 물리적인 힘과 카리스마로 그에게 복종을 요구하기에 이른다. 이때부터가 이 영화가 말하는 진짜 ‘반격의 서막’이다. 코바는 시저를 꺾고 자신이 유인원의 리더로서 인간들을 공격하기 위해 음모를 꾸민다. 그리고 이 음모가 바로 인간과 유인원의 공존을 막은 최대의 비극이 되어버린다.
이 3부작의 마지막 이야기인 ‘종의 전쟁’은 코바를 죽였던 시저가 코바와 같은 입장이 되는 상황을 그린다. 군인들에게 아내와 아들을 잃은 시저는 과거의 코바처럼 복수심을 품고 인간들을 찾아 나선다. 그는 정말 똑같은 아픔을 되돌려 주려고 하지만, 그런 한편 스스로 코바를 떠올리며 그와 같은 감정을 품게 된 자신에게 두려움을 느낀다. “코바는 인간에 대한 분노를 극복하지 못했어. 나도 마찬가지야.”
<출처 : 처닌 엔터테인먼트>
‘종의 전쟁’은 시저가 이전보다 더 위대한 영웅으로 거듭나는 과정의 이야기가 아니다. 위대한 리더는 자신의 신념과 가치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스스로 자신을 파괴하는 갈등에 의해 생겨난다는 이야기다.
한 가지를 더한다면 위대한 리더는 자신과 뜻이 다른 이의 어둠까지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는 게 될 것이다. 이 시리즈를 정치인들과 유권자들이 봐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실 유권자인 우리들은 정치인들의 내면까지 파악하고 표를 줄 수가 없다. 정치인들의 입장에서도 영화 속 시저와 같은 엄청난 갈등을 겪어본 경우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역시 ‘가능성’을 점칠 수 밖에 없는 유권자들은 다른 이의 어두움에 정치인이 대응하는 방식을 상상해 볼 수 밖에 없다.
시저는 그들의 어둠을 더 어두운 방식으로 제압했다가,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겪었다. 그러니 이때 우리의 리더라면 어떤 방식으로 그의 어둠에 대응할 것인지에 대한 상상력이 필요한 것이다. 어쩌면 눈에 보이는 사실들 보다 이러한 상상력이 선택권을 가진 유권자에게 더 많은 고민을 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흔히 고민이 너무 많아도 좋지 않다고 하지만, 선거에 있어서 만큼은 고민을 해볼 대로 하는 게 가장 좋은 일일 수도. <혹성탈출>은 바로 그 고민과 상상의 시작점을 짚어주는 영화인 셈이다.